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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5-13 23:20:49
  • 수정 2019-05-21 11: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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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장 전 미 정보부대 군사정보관이 13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정승호 기자>



미디어내일N 정승호 기자80년 광주에서 일어난 특전사의 발포는 자위권 발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직접 광주를 찾아 내린 사살 명령으로 자행된 무차별 살상이었을 것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증언자는 당시 미 정보부대 군사정보관으로 활동한 김용장 씨로 자신이 미국 정부에 보고한 사실을 중심으로 당시 현장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 특별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용장 전 미 정보부대 군사정보관은 “1980821일 서울 성남비행장을 출발한 헬기에 탑승한 전두환 장군이 K57(광주 소재 제1전투비행단)에 도착한 직후 당시 정호영 특전사령관과 이재우 505 보안부대장과 비행단 단장실에서 회동했다전 사령관의 광주 방문 후인 그날 오후 금남로에서 집단 발포가 이뤄졌으며 이때부터 시민군 사상자가 급속도로 늘었다고 말했다.


당시 전투비행단 단장실에는 전 사령관과 이재우 505 보안부대장, 불상 1명 등 4명이 있었으며 이러한 사실은 정보 보고서 형태로 워싱턴에 전달됐기 때문에 미국 정부 관계자들도 광주에서 일어난 전두환 관련 사항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었다는 증언이다.


그동안 전두환 전 대통령은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자신은 발포명령은 물론 당시 광주에 간 사실조차 없다고 발뺌해왔다. 당시 특전사령관으로 현장을 진두지휘했던 고 정호영 씨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광주에 온 사실이 전혀 없다며 군부대의 집단 발포는 자위권 차원의 불가피한 조치로 현장 부대장이 독단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고 주장해 국민에게 비난을 받았다.


김용장 씨는 전 보안사령관이 광주를 직접 방문한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면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광주에 왔는지 아닌지는 당시의 비행계획서를 찾아보면 확연하게 드러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이 아무리 문서들을 없애도 보안부대 문서는 다 소각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헬기 이동에 관한 공군 보안부대 자료를 찾아보면 사실 여부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광주에 내려온 것은 중요한 결정을 하기 위한 불가피한 이동이었을 것이라며 자신 생각으로는 당시 비행단 단장실에서 발포 명령, 사실상 사살 명령을 결정, 전달했을 것으로 믿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도 일부 극우 논객을 중심으로 거론되는 북한군 침투는 애초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했다. 김 씨는 당시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했단 보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당시 한반도 상공엔 2대의 군사첩보 위성이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고고도와 저고도에 있는 2대의 위성이 특히 북한과 광주를 집중적으로 정찰했다고 당시를 상황을 짚었다.


미국의 정보 자산이 총동원돼 한반도를 정밀 감시하는 상황에서 북한군 600명이 미군의 감시망을 뚫고 침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지만원 씨 등이 주장하는 대로 잠수정을 이용한 북한 특수 부대원이 강릉에 내리려면 잠수정 30대가 필요하고(물론 당시 북한에는 30대가 없었다) 태백산맥과 지리산을 종주해 광주까지 도착하려면 대략 1000km를 들키지 않고 이동해야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이런 주장은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는 설명이다.


김 씨는 애초 북한 특수군이 광주에 들어와 혼란을 부추긴 것이 아니라 한국군 선무공작단이 위장하고 광주로 숨어 들어가 과격한 폭동과 군경에 대한 공격을 주도했고 군과 유혈 충돌 등을 조직적으로 유도했다고 확인했다.


또한 일명 편의대로 불리는 사복군인들이 520일 제1전투비행단 광주비행장으로 왔다성남비행장에서 C-130 수송기를 타고 온 약 30~40명의 편의대원들은 당시 광주비행장에 내려 격납고 안에 주둔하고 있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대원들은 20~30대로 짧은 머리였으나 일부는 어설프게 큰 가발을 썼고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실도 보고서 형태로 미국에 보고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편의대는 광주에 침투해 시위대로 위장하고 주동자 체포, 선무공작 등의 업무 이외에 폭력 조장 등 과격 충돌을 유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날 증언으로 그 실체가 확실하게 밝혀졌다.


김 씨는 편의대 대원을 파견한 곳은 보안사령부였고, 홍성률 1군단 보안부대장, 서의남 505 대공 과장이 이들을 지휘했다강경 진압의 빌미를 만들기 위해 보안사령부가 편의대를 통해 고도의 공작을 펼쳤고, 이들의 정체가 밝혀진다면 광주의 모든 의문이 풀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19805·18 당시 한국에서 활동했던 미국 육군 방첩부대인 501정보여단 광주 파견대 군사정보관으로 재직했다.


김 씨의 첩보 보고서는 국방성 국방정보국(DIA)을 통해 미국 백악관까지 보고됐다. 특히 당시 카터 미 대통령이 김 씨 보고서 5개 중 3개를 직접 읽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김 씨는 당시 광주 파견대 군사정보관 중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정승호 기자 saint@usnpartn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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