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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입사 동기 남직원, 지금은 상사” 만연한 직장 내 성차별 ‘STOP!’ - “여자는 결혼하고 애 있으면 노룩패스, 남자는 그게 가산점” - “일 시킬 땐 남자처럼, 돈 줄 땐 여자니까” - “딸 같아서 그래? 나는 당신의 딸도, 조카도 아니다”
  • 기사등록 2019-03-08 23:32:23
  • 수정 2019-03-09 05: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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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광화문에서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제3회 3시 STOP 조기퇴근시위`가 열렸다. <사진 = 김남미 기자>


[미디어내일N 김남미 기자] 3월 8일 오후 세시, 광화문 광장은 3.8 여성의 날을 맞아 3시 조기 퇴근 시위에 나선 여성들의 웃음과 환호성으로 들썩였다. 발언자 중 한 여성은 실제로 두시반쯤 일 하던 곳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밝혔다. 한참 일할 시간인 ‘3시’에 파업이라니, 무엇이 이들을 광장으로 모이게 했나. ‘3.8 3시 STOP 공동행동’은 일하는 여성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간 쌓은 한과 분노를 페이미투(종이에 쓰는 미투) 형식을 통해 풀어냈다.


무대 바로 아래, 수십명이 옹기종기 줄을 서더니 한 사람씩 무대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박진감 넘치는 BGM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첫 번째 페이미투의 주인공이 광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옹골찬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너의 꽃이 아니다!” 뒤이어 올라온 여성도 외쳤다. “나는 아가씨가 아니다. 나에게도 이름과 직책이 있다!”


10여분 남짓 시간이 지났을까. 무대는 어느새 여성들의 각양각색 ‘페이미투’로 가득찼다. 미리 준비한 30여명의 차례가 끝나자, 즉석에서 청중 일부가 종이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동참했다. 이들의 발언을 한 데 모아 분류해보니, 직장 내 성차별 유형이 한 눈에 드러났다.


여자는 더 적게 줘도 된다? 애아빠는 우대하고 애엄마는 차별한다


나이대를 불문하고 일하는 여성 다수가 차별이라고 지적한 것은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였다. 중년 여성 노동자들은 “20년을 일해도 근속수당이 없다”, “30년을 다녀도 최저임금”이라며 과거부터 지속된 여성의 저임금 노동 현실을 전했다. 청년층 사이에서도 남녀 임금격차는 발생한다. 한 여성은 “같은 회사에 입사해도 남성과 여성의 임금에는 처음부터 차별이 있다”고 발언했고, 웹툰 작가라고 밝힌 여성도 “같은 플랫폼에 순위도 비슷한데 동급 남자작가와 나는 앞자리 수가 다른 돈을 받는다는 게 충격이다”라고 말했다.


▲ 시위에는 `아줌마란 소리 듣기 싫어 일터에서 왔다` `나에게도 이름과 직책이 있다` 등이 적힌 피켓이 등장했다. <사진 = 김남미 기자>


이 같은 임금 차별은 왜 발생하나. 한 참여자는 “여성 노동자는 용돈 벌러 온 것이 아니다!”며 여성의 임금 노동을 남성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인식을 비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가정이 생기면 돈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는 남자에게만 유효한가? 여자는 가족이 없나?” 반문하고 “여자도 먹여 살릴 가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기업이 남성에게 보다 많은 임금을 지급했던 건 집안의 가장인 남성이 가정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가족임금제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표현이 일반적이었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고, 부부의 맞벌이 비율은 갈수록 늘고 있다. 어느 미혼여성은 “나도 부모님을 부양하고 있는데 내 성과 평가는 뒷전이고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남직원에게는 앞으로 부양가족 생긴다고 평가를 몰아준다”며 여성도 가족 부양의 주체라고 강조했다.


남자가 승진할 때, 출산하고 경단녀 된 여성들은 비정규직으로


여성 노동을 폄하하고 가장의 노동에 의존하는 딸린 식구처럼 취급하는 관행은 남성의 승진을 유리하게 만들어 임금 격차를 벌려왔다. 한 여성은 “결혼한 여직원은 가정에 소홀하면 안 된다며 중요한 일을 주지 않고, 남자는 애아빠니까 승진해야한다며 승진시키고 임금을 더 준다”고 지적했다.


남자들이 항상 더 먼저 승진하는 이유는 회사가 애초에 중요한 업무는 남자에게만 맡기기 때문이라는 발언도 나왔다. 그는 “머리 쓰는 일은 남자만, 여자는 시다바리만…. 우리도 능력 있거든?”라고 말하며 여성의 능력을 믿지 않는 직장 내 분위기를 지적했다. 이에 또 다른 여성은 “남성이 할 업무, 여성이 할 업무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며 “업무에 있어 차별하지 마라”고 일갈했다.


일 하는 여성들에게 ‘출산 휴가’는 절실한 필요를 갖지만, 실제 회사에 요구할 시 경력단절을 각오해야 하는 위험한 모험으로도 여겨진다. 한 참가자는 “경력단절 후 일자리를 찾아보면 비정규직 밖에 없다”며 아이를 낳고 직장에서 쫓겨나다시피 퇴사한 여성들이 더 열악한 일자리로 내몰리는 현실을 지적했다.


일상적 무시·성희롱·꾸밈 강요, “화장 좀 해 아파보여”


임금이나 승진, 비정규직의 여성화 같은 굵직한 문제 외에도 여성들이 직장에서 느끼는 성차별의 고충은 반말, 무시, 성희롱, 꾸밈 노동 강요, 사무실 내 가사노동 전담까지 다양한 결로 뻗어있다. 페이미투 참가자들은 “옷을 예쁘게 입으니 사무실 분위기가 좋아졌다”, “혹시 애인 있는 거 아냐? 요즘 수상해?”, “여자가 돼서 조신해야지”, “(옳은 얘기 하면) 여자가 왜 이리 자기주장이 세? 너무 잘난 척을 해”, “네가 그러고도 여자냐?” 등 회사에서 흔히 듣는 성차별적인 발언을 전했다. 이들은 더 이상 꾸밈 노동을 강요하지 말라며 “그렇게 화장이 좋으면 네가 해라!”고 외쳤다.


또 한 여성은 “동기모임에서 여자 동기들은 반말을 듣지만 남자동기들은 존대를 듣는다는 걸 알았다. 반말은 어느 순간 폭언이 되고 성희롱이 되었다!”며 더 취약한 존재로 대해질 때 더 큰 폭력이 가능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서는 “성희롱이 아니면 할 말이 없냐?”, “미세먼지보다도 지긋지긋한 성희롱 스탑”, “난 일 하러 왔지 성희롱 당하러 힘들게 스펙 쌓아온 거 아니거든?”이라고 성토했다.


참가자들은 모든 발언을 마친 뒤 그동안 보고 듣고 겪었던 성차별적 언행을 부수고, 찢는 시간을 가졌다. 부서진 우드락 조각과 종이 파편이 주변으로 시원하게 흩뿌려지며 참가자들은 잠시나마 해방감을 만끽했다.


한편 오늘(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인만큼 ‘성별임금격차’ 외에도 ‘스쿨미투’, ‘낙태죄 폐지’, ‘미투운동’, ‘대학 내 성평등’, ‘클럽 약물반대’ 등 2019 한국여성의 삶에서 터져 나온 이슈로 다양한 시위가 온 종일 이어졌다.


김남미 기자 nammi215@usnpartn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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