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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4-14 16:23:18
  • 수정 2019-04-15 10: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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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민중당, 노동당, 녹색당 등에서 낙태죄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김남미 기자>



【미디어내일N 김남미 기자】낙태죄가 사실상 위헌 판정을 받으며 폐지 수순에 접어들었다. 66년만의 변화다. 그러나 임신 중지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태아와 여성의 권리를 대립시키는 낡은 구도에서 수십년째 멈춰있다. 이 구도는 실제로 유효한가? '태아의 생명권' 주장이 놓치고 있는 지점들을 살펴봤다.


태아 생명권절대적이라고 하지만, 장애아 낙태는 침묵


어제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처벌 유지를 주장한 두 명의 법관이 있다. 조용호, 이종석 법관은 생명은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므로 태아의 생명 보호는 매우 중대하고도 절실한 공익”이라고 규정했다. “(낙태를 합법화 한다면) 훗날 우리조차 다음 세대의 불편요소로 전락해 안락사, 고려장 등의 이름으로 제거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러나 이같은 의견에는 모순점이 있다. 기존의 낙태 관련 법률은 생명의 존엄성으로 인해 낙태를 죄로 규정했다고 보기 힘들다. 역사적으로 국가가 인구 관리 측면에서 여성의 임신출산에 접근했다는 점(인구 증가 시 산아제한, 인구 감소 시 낙태 불법화)은 누차 지적된 바 있다. 또 현행 모자보건법에서 장애가 유전될 가능성’으로 인한 낙태는 합법이다. 현직 법관이 굳이 고려장까지 끌어와서 무리해서 비유하지 않더라도 (사회) 불편 요소로 전락해 제거대상으로 취급받은 생명은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지켜져야 할 생명과 지워도 될 생명은 그 사회의 인권 수준에 따라 취사선택된다. 낙태 불법화로 인해 (열악한 수술 여건 등으로)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합병증에 시달리는 여성의 안전과 생명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쪽 눈을 감은 채 주장하는 '생명의 존엄성'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태아 vs 여성실제로는 불가능한 대립 구도


엄밀히 따지면 태아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다. 그러므로 입장을 가질 수 없다. 낙태죄 찬성 측의 입장은 태아의 것이 아니라, '태아를 임의로 대리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의견'이라고 봐야 한다. 실제로는 일부 종교계(천주교 개신교)와 낙태 반대 입장을 가진 단체나 개인 vs 임신 중지를 요구하는 여성들이 대립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태아 vs 여성의 대립 구도는 몇십년째 관성적으로 쓰여왔다. 대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더 자극적인 갈등을 만드는데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도는 그 자체로 임신 중지를 택하는 여성들을 생명을 경시하고, 약한 존재를 핍박하는 가해자처럼 그려낸다. 이는 오랜 세월동안 임신 중지는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인 행동이라는 낙인으로 이어졌다.



▲ 발언 중인 노동당 신지혜 공동대표 <사진: 김남미 기자>


어제 헌재 앞에서 낙태죄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한 진보정당에서 거듭 이 문제를 지적했다. 노동당 신지혜 공동대표는 태아의 생명이 먼저냐,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먼저냐 강요하지 말라. 다만 우리는 새로운 질문을 던져한다고 촉구했다. 또 서울녹색당 엘리 사무처장은 단순히 태어나는 것만이 생명의 권리냐?”고 물으며 태어나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까지 요구한다고 말했다. 생명권을 제대로 존중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제약에 짓눌리지 않고 임신과 출산을 택할 수 있고 양육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계 어떤 사유든 낙태 수술은 절대 안 돼


한편 '천주교주교회의'는 헌재 판결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여성 처벌을 안 할 수는 있다. 다만 천주교 교리 상 낙태 자체는 죄이기에 의료진 처벌 조항을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모자보건법에 사회경제적 사유를 추가하자는 일부 개선안에도 반대했다.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의 어려운 처지는 이해하겠으나, 생명을 해칠 수는 없으니 어떤 경우든 일단 출산까지는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실은 교리보다 훨씬 복잡다단하다. 상식적으로 처벌 가능성이 있다면 의사들의 수술 거부는 불 보듯 뻔하다. 낙태가 불법인 칠레에서 여성들은 차량 통행 중인 도로에 뛰어들고, 계단에서 구르고, 소화전에 배를 부딪치는 등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 안전하게 임신 중절에 접근 할 수 없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노동당 신민주 부대표는 태아의 생명권도 소중하다는 말, 정말 많이 들었고 그 말이 정말 많이 여성들을 멈추게 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출산과 육아를 분절해서 보는 시각 속에서 출산만이 강조되고 그 여성이 앞으로 겪게 될 인생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어제 오전, 같은 종교계에서도 천주교 주류와 극우 개신교 세력의 한결 같은 입장에 대해 교회가 여성에게 순응적 인간상을 강요하며, 여성을 소유물이나 소모품처럼 대해온 관성이라며 거부의 뜻을 전했다.


김남미 기자 nammi215@usnpartn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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