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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2-12 16:16:51
  • 수정 2019-02-21 11: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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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없는 이들에게 여전히 세상은 곳곳이 세월호고, 구의역이고, 태안 화력발전소인지. 이 실상을, 이 참상을, 이 야만을 규명해야지요. 남은 우리 모두가 김용균이 되어 이 뿌리 깊은 설움을, 이 분노를 규명해야지요.


▲ 故 김용균님의 어머니 김미숙씨,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고 살인을 저지른 책임자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부당함이 바로 잡힐 것이다. 그 길이 우리 아들과 같은 수많은 비정규직을 사회적 타살로부터 살리는 길이다` <사진 = 남상오 기자>


【미디어내일N 김남미 기자】지난 9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故 김용균씨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그의 장례는 2,500여명에 달하는 시민들의 추모 속에서 민주사회장으로 진행됐다. 


광화문 광장에 차려진 무대 위에서 백기완 장례위원,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송경동 시인, 故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 씨 등이 조사를 낭독했다. 고인의 동료들, 세월호 유가족, 스텔라 데이지 참사 희생자 유가족 등이 함께 자리했다. 


무대 앞 쪽에 앉은 이들은 ‘내가 김용균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검은 머리띠를 동여맨 채로 모든 발언을 귀 기울여 듣는 모습이었다.


▲ 지난 9일 광화문에서 열린 故 김용균씨 영결식 <사진 = 남상오 기자>


두달만에 아들의 장례를 치른 김미숙 씨는 단상에서 “용균아 너를 어쩔 수 없이 차가운 냉동고에 놔둘 수밖에 없는 엄마가 너한테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구나. 하지만 엄마는 너의 억울한 누명을 벗어야 했고 너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이 너를 오래도록 잊지 않고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단다.”고 전했다. 이를 지켜본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故 김용균의 어머니는 아들의 사고 이후, 장례도 미루고 태안화력 하청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제도 변화에 앞장서왔다. 이를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만에 전면 개정되었고, 정부는 태안화력 비정규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그러나 제2의, 제 3의 김용균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엔 남은 과제가 아직 많다.


이 날 송경동 시인은 추모시 ‘진상을 규명해야지요’를 낭독했다. 그는 시를 통해 故 김용균 씨의 죽음이 있기 전부터 차곡차곡 쌓여왔던 위험의 전조들을 낱낱이 토로했다.


“왜 청년은 2인 1조 매뉴얼을 따르지 않고 혼자 일해야 했는지. 스물여덟번의 작업 환경 개선 요구는 누가 꿀꺽했는지.....왜 산재사고의 98%가 비정규직 외주 노동자의 몫이어야 했는지. 국가는 왜 공공부문 사유화를 밀어부쳐 왔는지. .... 왜 국가와 의회가 앞장서서 상시 지속 업무마저 비정규직 해왔는지. 진상을 규명해야지요.”


또한 백기완 통일문제 연구소장은 “돈밖에 모르는 이 사회가 용균이를 학살한 것”이라며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사람 목숨까지 희생시키는 노동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했다.


故 김용균의 장례가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 까닭은 이렇듯 그의 죽음이 소위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끌어올린 사회적 죽음이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인권실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2월 사고가 난 태안화력 9,10호기는 가장 최근에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외주화와 경쟁체제를 전제로 설계와 시공이 이뤄져 1~8호기보다 더 열악한 작업환경을 갖고 있었다. 


저비용과 효율성만을 중시하느라 그 안에서 일하는 이들의 안전문제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려되지 않았고, 이는 8년 간 11명의 하청 노동자들이 산재로 사망하는 위험천만한 작업 환경으로 드러났다.


▲ 故 이한빛님의 어머니 김혜영씨, 더 이상 죽음없고, 청년들이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것을 엄마가 약속할께. <사진 = 남상오 기자>


본 보고서에서 故 김용균 씨의 동료는 “저도 용균이처럼 낙탄을 손으로 끄집어내다 헬멧이 벨트에 닿아서 벗겨진 적이 있었어요. 운 좋게 헬멧이 턱 끝에 걸려서 헬멧이 벗겨져서 그랬지. 아니면 저도 휩쓸려갔겠죠.”라고 인터뷰했다. 동료들에게도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일이었다.


발전소 바깥에서도 비슷한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다. 세월호에서도, 구의역 사고에서도 그 이면에는 안전이 중요한 업무를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에게 떠맡기고, 사고가 터져도 원청은 나 몰라라 하는 외주화의 문제가 있었다. 이것이 각자 다른 이름의 사회적 참사를 겪은 이들이 영결식에 모여 ‘내가 김용균이다’라고 거듭 외쳐야 했던 이유다.


김남미 기자 nammi215@usnpartn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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