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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 바른미래당 당대표 출마자에게 묻다, 이수봉 (1) - 안철수 대표, “친구인데 도와주라” - ‘보수와 진보라는 프레임을 뛰어넘는 새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당
  • 기사등록 2018-08-05 21:13:26
  • 수정 2018-08-08 12: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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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일 이수봉 위원장의 여의도사무실에서 미디어 내일 정치부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


【미디어내일】 정치부 = 미디어내일은 201892바른미래당 지도부선출대회에 출마선언을 한 출마자들과 인터뷰를 기획하였습니다.

기획 인터뷰 바른미래당 당대표 출마자에게 묻다첫 번째 모시는 분은 지난 31일 출마선언을 하신 이수봉 전)바른미래당 인천시당 위원장입니다. 지난 1일 오후 여의도 이수봉 위원장의 사무실에서 만나 솔직담백 인터뷰를 했다.

이수봉 위원장은 부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려대에 진학했다. 고려대 재학중 전두환 군부독재에 대항해 민주화 운동을 했다. 그 시기, 투옥과 고문속에서, ‘사회변혁을 위해서는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와 함께 해야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병원노련,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 금속연맹,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등을 거쳤다. 특히 2008년 기본소득운동을 한국에서 최초로 설파했다. 2012년 촛불집회와 안철수 현상에서 민주진보세력의 새로운 활로를 찾았고, 노동정치연대포럼을 결성하여, 안철수 대표의 진심캠프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안철수 대표의 친구로서, 동지로서 함께 했다.


이수봉 위원장의 이력을 보면,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이 눈길을 끕니다. 이 직함을 본 대다수 분들이 정의당이나 진보당쪽에 계셔야하는데, 왜 바른미래당에 계시는지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위원장님의 소개와 바른미래당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


부산에서 나서 고등학교까지 다니다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대학다닐 때 전두환 독재정권에 맞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1년간 다녀왔다. 재야단체에서 장기표, 김근태, 이부영 선생님과 같이 민주화운동을 했다.

재야 단체에서 활동을 하다가, “내가 생각하는 한국사회의 변화는 이렇게 해서 되겠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세상의 변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후 인천을 중심으로 주물 및 철공 일들을 하면서 30여년간 노동운동, 철거민 운동 및 시민사회 운동을 했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시절에 노동계의 실업보험, 고용보험 및 기초생활보장법 등 노동과 사회복지 정책개발에 참여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다. 이 고민속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2008년 기본소득론을 주장하게 되었다.

▲ 2012.9.20 프레스센터에서 노동정치연대포럼 출범식.

2012년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을 역임하면서, “민주당으로 바뀌지 않겠다. 근본적으로 민주당도 보수 기득권정당의 한축이라는데 있어 한계가 있다”라는 생각에 노동정치연대포럼을 만들어 동지들과 사회 변화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에 대해 고민했다.


사실 민주노총의 브레인 역할을 하다 보니, 주요 정권교체기마다 많은 연락들이 왔었다. (웃음) 문재인 대통령쪽에서도 왔었다.


사실 성향상 정의당이나 진보당으로 가는게 맞죠.


그러나 제가 활동을 해보니, 진보세력의 많은 문제점들을 느꼈다. ‘교조적인 관념∙아젠다에 집착하다보니, 민생문제에 너무나 소홀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도 87년 노동자 정신을 망각하고, 자신의 이익관계를 중심으로 이른바 대기업 노조 중심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사회개혁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촛불정신에도 못따라가느냐 ?”라는 의문이 들었다. 결국 ‘그것은 결국, 사상 이념의 문제였다. 우리사회의 변화를 포착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사회의 변화를 포착하지 못하고 뒤처지는 기존 진보세력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안철수 대표와 함께 하신건가요?



(웃음) 네 그렇죠.



2012년도에 9월17일에 안철수 대표님 기자회견이 있었다. 한달쯤 뒤인가 10월초에 안철수 대표에게서 “친구인데 도와주라”라는 전화가 왔다. 사실 안 대표와는 중학교 동창이긴 하지만 그때까지는 잘 몰랐다. 그래서 노동정치연대포럼 회원들과 함께 안 대표를 만났다. 안 대표와 이야기를 하면서, “이 사람은 그래도 재벌들한테 휘둘릴 사람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회원들과의 토론속에서,“안철수 대표 혼자 ‘안철수 현상’을 감당할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진보개혁세력이 안철수를 도와주자’”라는 의견들이 모아졌다.




▲ 안철수 진심 캠프, 노동연대센터 개소식


그래서 아시다시피, 안철수 대표와 같이 진심캠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다 무소속의원 시절 안철수 의원의 수석 보좌관을 했다. ‘보수와 진보라는 프레임을 뛰어넘는 새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자고 해서, 새정치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그와중에 민주당과 합당해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하게 되었다. 아마 그때가 안철수 대표가 처음으로 힘들었던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때, 안철수를 지지하던 사람중 30~40%정도가 이탈을 했었다. 나도 합당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자세였지만, 지지세력 등등을 수습을 해야 했기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 직능수석부위원장 자리를 맡았다.


새정치민주연합시 활동도 그리 녹녹지 않았다. 한계가 곧 보이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제대로된 ‘아젠다’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공정성장론’을 만들어낸 것은 큰 성과였다.


그러다 국민의당을 창당하게 되었다. 처음에 성공적이였다. 그러나 총선후 리베이트 사건 등등 이슈들로 인해, 당시 정치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구체적 이슈들을 생산해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서, 지지도가 하락반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바른정당과의 통합이 기계적으로 추진된 것 같다. 통합방향성이 충분히 논의되어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해던 점이 아쉬웠다. 호남이 떨어져 나간 후, 바른미래당이 출범했다. 그러나 ‘노선’, ‘전략’이라는 두 개의 리스크가 상존한 통합이였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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