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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5-16 20:25:04
  • 수정 2019-05-17 18: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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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풍은 못 되더라도 왔다 간 티도 안 나는 근로감독은 하지 마라"

-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본부장


▲ 조장풍이 병원 노동 실태를 조사한다면? <사진: MBC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캡쳐>



【미디어내일N 김남미 기자】간호사 자살이 있었던 두 곳은 하반기 중 특별 근로 감독에 준해 점검하려 한다는 고용노동부의 계획을 전해 들은 토론회 사회자 현정희 씨가 남긴 말이다. 상상해봤다. 만약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 아산병원과 서울의료원에서 벌어진 죽음의 자세한 내막을 헤집어보게 된다면 어떤 광경을 목격하게 될까.


직접 병원까지 갈 것도 없다. 어제 국회 토론회를 찾은 현직 간호사들의 증언만으로도 병원이 부당노동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블랙 기업이라는 사실은 명확해진다.


"수습 기간에 실제로 월급 36만원 받고 일했다."

"올해만 해도 대형대학병원에서 40만원 받고 일한다는 신규 간호사 제보를 받았다."

"최장 18시간까지 일해 봤다. 저녁에 출근해 그다음 날 점심 먹고 퇴근한 적도 있다. 오버타임 수당 1원도 못 받았다."

"서울대병원만 해도 근로감독관이 연장 근로, 휴게 시간 미보장, 관리자가 전날 변칙적으로 휴일 지정 등 여러 문제 지적했지만, 병원은 연장 근무가 자발적이라 대책이 없다 주장하고, 전산 접속 권한 제한에 그쳤다."


심지어 이 정도는 본 게임이 아니다. 조장풍이 들으면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어!” 기함하며 눈을 번뜩일만한 일들이 한국의 무수한 병원에서 차고 넘쳐난다.



태움이라는 잘못된 포커스, 진짜 문제는 심각한 인력 부족



▲ 고 박선욱 간호사 추모 플랜카드 <사진: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대책위 페이스북>



가족이나 친구 중에 간호사가 있는 이들은 안다. 아주 많은 간호사가 차라리 죽으면 편해질까?가슴 한켠에 칼을 품고 일한다는 것을. 누군가는 말한다.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디 있나, 다들 그렇게 산다고.


작년 아산병원에서 죽음을 택한 고 박선욱 간호사의 유가족이 이런 말을 했다. “어른으로서 (병원이) 1년 동안 필요한 신규를 미리 뽑아서 월별로 입사시킨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힘듦을 짐작했어야 했다. 고작 해준 말은 신규는 원래 힘든 거니, 최소 1년은 해야 사람 구실 하는 거라고. 너무 쉽게 내뱉었던 그 말을 주워 담고 싶다.”


작년,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에서 언론은 간호사들 간 태움 문화를 이슈로 만들었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이런 초점이 병원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 간 갈등으로 단순화했다고 비판한다.


태움 문화가 신규 간호사에게 집중된다는 점을 주목해보자. 회사에서 CEO가 인력 부족을 이유로 3개월 차 신입사원에게 팀장급이 담당하던 큰 거래처와의 실무를 맡겼다. 이로 인해 차질이 생겨 중요한 거래가 취소되었다면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상식적으로 ‘CEO는 신입에 왜 그 업무를 맡겼냐는 지적이 나와야 맞다.


그러나 현직 간호사 박고은씨가 말하길, 병원은 “4년 동안 간호사 책 조금 읽고, 실습 기간(1000시간) 동안 눈으로 구경한 게 전부인, 일반인에 가까운 신규에게 몇 달 만에 선배와 동일한 업무를 시킨다. 이미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쁘게 뛰어다니는 선배 간호사들은 신규 교육까지 감당하지 못한다. 신규 간호사들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맡게 되는 환자 대응에 공포에 가까운 무력감을 느낀다. 심지어 이들이 다루는 것은 물건이 아닌, 사람의 생명이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애초부터 잘못된 체계, 그런데도 지금 병실에 있는 환자들을 감당해내야만 하는 책임, 이 간극 어딘가에서 태움이 발생한다. 지금 병원의 낮은 인력 수준과 노동 강도는 체력은 기본이고 정신력, 끝에는 생명에 대한 의지까지 긁어내서 환자들을 케어하라 요구하고 있다. 사람을 살려야 할 사람들을 죽음에 이를 때까지 태우고 있는 진짜 태움의 가해자는 누구일까.



간호사의 악조건, 피해는 환자에게 되돌아와



▲ 왼쪽부터 최원영 간호사, 최민(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현정희(사회자) 외 2인 <사진: 김남미 기자>



이날 간호사들이 가장 강력하게 강조한 것은 간호사 1인당 실시간으로 담당하는 환자 수를 줄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30년 경력의 한 간호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환자 18명, 20명씩 본다.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한국 간호사들이 평균 담당하는 환자 수는 15~20명 수준이다. 간호사 1인이 평균 4~5명을 케어하는 캐나다·호주·미국의 4배 수준이다. 옆 나라 일본만 해도 평균 7명을 담당한다.


간호사 인력 부족의 폐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되돌아온다. 보건의료노조가 29000여명에게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인력 부족으로 환자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거나 질이 낮아졌다는 응답이 75% 이상이었다. 실제 의료사고가 발생한 적 있다는 응답도 33.1%에 달했다.


이날 간호사들은 공통으로 환자 중증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반해 중증 환자 처치 수준은 낮아지고 있다며 외부에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실태가 심각하다고 증언했다.


'행동하는 간호사회' 최원영 간호사는 고위험 의료 기기 사용 빈도가 200,300% 늘었다. 예전에는 만 1년 지나야 보게 했던 기계를 이제는 (몇 개월 차 간호사에게) 어쩔 수 없어. 네가 봐야 해그냥 닥치는 대로 하게 한다고 말했다. 환자가 나빠지면 적은 인력으로 가장 위급한 환자한테 달려간다. 그럼 나머지 환자는 버려진다. 그중 또 다른 환자가 나빠지면 그에게 달려가고, 더 오래 버려진 환자가 다시 위험해진다. 이 악순환의 반복이다. 1등급이라는 서울대 병원도 이 정도인데, (그 이하 등급인) 다른 병원들은 어떻겠나라고 성토했다.



폐쇄적 병원 문화, 변화를 위해 국민의 관심 필요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이 산재로 인정받았지만, 아산병원은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있다. 고 서지윤 간호사가 있었던 서울의료원에서는 3년 전에도 같은 행정부서에서 직원이 죽음을 택한 적 있다. 그러나 서울의료원 측은 두 사람의 죽음에 관해 개인의 문제일 뿐 책임이 없다고 일관한다.


의료연대본부 새서울의료원 김경희 분회장은 현재 서울의료원에서 “(서 간호사 사건으로 병원 환자가 줄어 임금이 안 나올 수 있다. 서지윤 간호사 때문에 무기계약직이 정규직으로 전환이 안 되고 있다등 악의적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며 조직 내의 강압적인 문화, 개인의 주관적 의견을 말하면 보복당한다는 학습된 침묵, 보복성 인사 등으로 인해 공정한 진상규명을 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했다.


서울의료원은 서울시 관할에 있는 공공병원이다. 이에 김 분회장은 선도적인 사례를 만들 수 있도록 박원순 시장의 응답과 서울시의 적극적인 행동, 또 병원 시스템의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줄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남미 기자 nammi215@usnpartn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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