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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2-01 18:34:11
  • 수정 2019-08-12 12: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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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WWE (World Wrestling Entertainment)의 ‘RAW’와 ‘스맥다운’을 즐겨 보곤 했다. 근육질의 선수들을 보며 동경했고, 선수들만의 궁극기술을 흉내 내곤 했다. 레슬링 사각 링에서 펼쳐지는 선과 악의 대립과 링 밖에서 펼쳐지는 치정 막장극을 보면서 감동과 분노라는 감정의 극과 극이 오고 갈 때면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많았다. 특히 레슬매니아라는 일종의 대형 이벤트 경기가 있는 날에는 바둑과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시던 아버지께 졸라가며 본방사수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머리가 커가면서 WWE가 철저히 각본에 의해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WWE 세계 속의 선과 악, 사랑과 우정 그리고 배신이 설정에 의한 것이었다. 참으로 순진했던 때라 너무 충격적이었다. 프로 레슬링 경기를 보며 몰입했던 나의 감정에 대한 배신이었다. 그 순간부터 그들은 선수가 아니라 광대였다. 현란한 서커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시청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WWE 같은 곳이 있다.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에 위치한 국회다. 300명의 선수가 지향하는 신념이나 가치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면서 우리는 선, 너희는 악으로 규정하고 질리도록 입씨름을 벌이는 곳이다. 선수들끼리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등 국회를 넘어서 법정까지 경기장을 넓히는 데 힘쓰고 있다. 이 선수들은 자신들을 발굴해 준 지지자를 위해서라면 고성과 막말, 단식과 파업 등 자극적인 쇼를 여과 없이 발산한다. 난 이를 두고 국회는 ‘여의도 스맥다운’이라고 공연히 이야기하곤 했다. 적대적 공생관계에 기반을 둔 속 보이는 대립 구도로 선거 때마다 표를 늘 나눠 먹기 때문이다.


진보를 지향하는 생계형 국회의원들과 보수를 지향하는 노후보장형 국회의원들의 선의는 결국 지옥으로 가는 길 위의 포장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선과 악의 구도에서 부르짖는 그들의 외침으로 무엇이 달라졌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보통사람들의 삶은 악화되고, 기업은 늘 위기라며 울상이며, 국가경쟁력은 하루가 다르게 도태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선거를 앞두고 끝을 모르는 내로남불 발언과 5시간 30분짜리 교대 단식 등 기상천외한 쇼에 여념들이 없다. 이젠 지겨운 여의도 스맥다운을 안 볼 수는 없을까? 내년의 총선이 여의도 스맥다운의 해체를 선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나보배 칼럼니스트


'인천in'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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