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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2-27 16:00:24
  • 수정 2019-02-27 17:2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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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국회에서 열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토론회. <사진: 김남미 기자>


[미디어내일N 김남미 기자] 재작년 방영한 자체발광 오피스는 주인공이 시한부라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비록 계약직 신입사원이지만 살날이 많이 남지 않은(그렇다고 착각하는) 주인공은 직장 내 갑들을 향해 사이다 발언을 쏟아내는 모습으로 많은 취준생과 직장인의 공감을 끌어냈다. 한편으로 이 설정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온전히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 하고, 을의 가면을 뒤집어쓴 채 살아야만 하는 현실의 반증이기도 했다.


여기, 화려한 가짜 가면 뒤에 숨고 나서야 나의 진짜 얼굴을 드러낼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있다. 지난 22, 더불어민주당 청년·대학생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 그간 한국이라는 갑질 공화국에서 겪은 차별 경험담을 털어놓은 청년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똑같은 일을 해도 학력에 따라 다른 시급


‘SKY캐슬의 흥행이 시사하듯 한국사회의 스무 살은 대학에 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뉜다. 대학생 신분을 획득하지 못한 20대는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차별과 마주한다. A 씨는 스물 한 살이었던 과거, 수학 학원에서 일하는 도중 우연히 자신의 월급이 같이 취직한 친구에 비해 적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같은 일을 한 두 사람의 월급이 차이가 났던 원인은 학력에 있었다. 고졸이었던 자신의 시급은 5500원으로, 대학생인 친구의 시급은 6000원으로 책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몇 년 후A 씨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대학 간판을 단 이후에도 그가 넘어야 하는 장벽은 끝이 없었다.


A 씨의 장래 목표는 국회 보좌관이다. 어느 날 그는 알고 지내던 선배 보좌관에게 자신이 이 일을 하기 위해 보완해야할 점에 대해 물었다가 예상치 못한 지적을 받았다. 선배가 말하길, “이 판은 다 SKY 아니면 대학원, 해외 유학파들도 많다. 그러니 너도 대학원에 가서 학벌 세탁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는 것이다.


이토록 잔혹한, 요즘 들의 직장 생활


학력·학벌과 스펙 경쟁의 레이스 끝에 마침내 직장인이 된 청년들의 사정은 어떨까. 비정규직 신분만 벗어나면 아름다운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던 B 씨는 막상 회사에 들어간 이후,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제 능력과 자질을 의심하며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냈다고 했다.


B 씨는 여자 신입직원이었다. 그는 입사 이후, 부장님이 남자가 주방 들어가는 걸 싫어한다는 이유로 컵 설거지와 커피 심부름을 도맡았다. 잦은 야근을 했고, 수당도 없이 주말 출근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첫 월급마저 이해할 수 없는 기준으로 책정되어 있었다. 그가 일한 시간과 비례해 계산해보면 최저 시급에도 미치지 않았으나, 어찌나 교묘하게 계산했는지 법적 규제에는 걸리지 않았다. 결심 끝에 사장에게 문제제기 했을 때 그가 들은 말은 요즘 애들은 너무 돈에 연연해한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라는 닳고 닳은 훈계였다.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토론회에 참석한 `C`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남미>


특허법률 사무소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일했던 C 씨가 겪은 갑질도 혹독했다. 제대로 된 인수인계도 없이 업무를 시작했고, 근무 시간 안에 끝날 수 없는 업무량을 떠맡았다.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하면 다른 부서의 안 좋은 시선을 걱정하는 상사의 꾸중을 들었다. 심지어 C 씨의 상사는 얼마나 일하든 하루에 한두 번 이상 화장실에 가지 말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점심시간에는 10분 이내로 밥을 먹고, 산책이라는 이름의 등산을 1시간 동안 해야 했다. 피부에 열꽃이 피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발목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지만 참았다. 수습기간을 잘 버티면 정규직을 시켜주겠다는 상사의 약속을 믿었고C 씨는 어떻게든 열심히 해서 정직원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깨 너머로 곁눈질하는 것 외에 따로 업무교육을 받지 못 한 상황에서 몇 번 실수를 하게 되었고, 그 시점부터 상사는 퇴근 후에도 그렇게 일을 버벅거리고 못 할 거면 그만뒀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카톡을 했다.


회사를 그만두기 직전 한 달부터 C 씨는 하혈 증세를 보였다. 몸이 먼저 이상 신호를 보낸 것이다C 씨는 결국 퇴사 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대상 포진을 진단 받았다.


요즘 청년이 나약한 게 아니라, 그들이 너무한 것


대학 내 성추행을 경험한 또 다른 참가자는 이런 말을 했다. “행사 포스터에 있는 네 잘못이 아니야문구를 보고 나서야 발언을 결심했습니다. 이 갑질로 점철된 세상에서 내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지 않는다는 게 참 힘든 일 같습니다.”


C 씨도 발언에 앞서서 이게 과연 갑질인지, 제가 그 분 말대로 너무 마음이 여리고 사회생활에 적합하지 못한 사람이었던 건지 고민 된다며 저어했다. 사회의 관습적 언어는 약자의 고통을 개인의 성향이나 자질 탓으로 돌리는 데 능하다.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입한 청년들은 사회생활은 원래 다 그렇다는 말들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차별이나 권리 침해로 인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퇴사 후 시간을 가지면서 비로소 당시의 상황을 돌아보게 된 C 씨는 말했다.


제가 문제였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 건강 상태는 내 자신이 멍청한 게 아니라 (어쩌면) 그분들이 너무한 걸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어요.” 또한 그는 요즘 청년들이 나약하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게 아니라) 경우를 알고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예의를 아는 이들이라서 더 견딜 수 없었던 건 아닌가싶다고, 이제는 다르게 생각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이 날 발언자들은 위에 소개된 내용 외에도 대학원 내 비리, 대학 내 성폭력, 알바생에 대한 손님의 갑질, 고졸이 느낀 학력 차별의 실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청년들이 겪은 갑질 사례를 전했다. 끝으로 이들이 현장에서 필요성을 느낀 제도 및 방안을 건의했다. 대학 내 학생, 강사들도 내부 고발을 했을 시 공익 신고로 보호 받을 것, 중소기업에도 대기업의 경우처럼 심리상담소를 운영하고 직원의 심리적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제도를 확충할 것, 공무원직이 아닌 일반 기업에서도 학력·학벌에 상관없이 동일 노동·동일 임금을 보장할 것, 직장 내 문화를 바꾸기 위해 직위 대신 직책에 권한을 부여하고 직장 내 역할 바꾸기 체험을 도입할 것 등등이다.


김남미 기자 nammi215@usnpartn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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