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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죽지 않는 빚', 이제는 해법을 찾아야 할 때 - 20년 넘은 장기소액연체, 이제는 재기가 아닌 생존의 문제!!! - 공동체의 유지, 예속되지 않는 시민이라는 공화주의의 관점에서도 주목해야
  • 기사등록 2018-09-06 14:03:52
  • 수정 2018-09-06 14: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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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내일】김형중 기자 = “죽어도 죽지 않는 빚”이 있다. 바로 소멸시효 완성채권(이른바 죽은 채권)이 매각후 추심을 통해 되살아나는 것이다. 채권이 매입된 뒤 지급명령제도를 활용하거나 소액 일부 상환을 종용하는 방식으로 소멸시효가 연장돼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치권은 이 “죽지 않는 빚”의 문제를 입법을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을 거듭해왔다.


▲ 김해시의 장기부실채권 탕감식 모습. (출처 = 주빌리은행)


지난 19대 국회에서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른바 “죽은 채권 부활 금지법”을 발의했으나 회기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2016년에는 제윤경 의원이 소멸시효 완성채권의 추심을 금지하고 위반할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및 단체소송의 근거를 마련하는 법률안을 제출했다. 채이배의원(당시 국민의당)은 2017년 채권추심자의 추심 대상채무 관련 정보의 서면 통보 의무,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의 양도/양수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률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또한 지상욱 의원은 2016년(당시 새누리당) 이러한 내용에 더해 채무자에게 재난으로 재산에 심한 손실이나 변제능력이 현저히 감소하는 등의 채무변제가 부득이 하게 어려운 경우에는 채권추심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안을 제출했었다.


금융당국 역시 소멸시효완성 채권의 추심과 매각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은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추심업체들을 지도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시행 중인 '채권추심업무 가이드라인'은 그 중심에 있다. 소멸시효 완성채권의 추심·양도금지와 채권추심 전 통보의무 강화, 채무자 접촉행위 제한, 채무자 대리인 제도 등에 더해 채권추심 시 소멸시효 완성여부 통지를 의무화하고 특정 상황에서 추심을 금지하는 조항 등이 포함됐다. 모두 오랫동안 추심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의 새 출발을 위해서다. 대한민국 사회가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로 만들기 위한 걸음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한계가 있다. 즉 대부·추심업체에서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국회가 지속적으로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2017년 정부는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1조9000억원의 소액·장기연체 채권을 소각해 채무를 탕감해주기로 결정했다. 기금이 보유한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의 연체 채권을 소각하면서 총 43만7000명의 채무가 소멸했다. 일인당 약 4백30만원 정도의 부채가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짧게는 10년 만의 일이다.


물론 “빚은 갚아야 한다.” 그렇지만 “갚을 수 없는 빚”의 문제도 있다. 특히 가장 흔한 악성 채무인 장기·소액의 소멸시효 완성채권은 “일반적인 빚”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5년 금융당국이 소멸시효 완성 채권에 대해 관리감독을 강화하기 전까지 금융사들은 통상적으로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자산유동화회사나 대부업체, 추심전문업체에 채권을 매각했다. 소멸시효가 지난 ‘죽은 채권’들은 액면가의 1~5%가량의 소액에 팔렸다. 매각가를 고려할 때 원채권자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갚지 않은 것이나 다름 없는” 채권인 것이다. 채권을 산 사람들은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하거나 채무자들에게 10원이라도 변제할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소멸시효를 계속 부활시켰다. 매입한 채권의 추심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더 낮은 가격에 채권을 매각하는 일이 반복됐다.


소멸시효완성은 채권금융사에서 돈 받을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채권금융사에서 소멸시효완성 대상자를 선정할 때는 채권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경우다. 그렇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채권이 길게는 20년 넘게 채무자의 삶을 옥죄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지 극히 낮은 가격에 매입돼 추심비용을 상회하는 수익을 발생시키는 것 뿐이다. 자산관리회사에 매각되는 채권의 매각가격은 액면가의 0.5%에 불과하다. 액면가 100만원의 채권이 5000원에 매각되는 셈이다. 이중 10만원의 채권만 회수돼도 매입금액 대비 이익률은 2,000%, 100만원이 모두 회수되면 20,000%에 달한다.


소멸시효완성 채권의 추심·매각 금지나 특히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채권 매입후 소각은 도덕적 해이 문제를 야기하거나 대출 승인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채무자의 경제상황에 따라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과 프리워크아웃, 회생법원의 개인파산과 개인회생 등 제도를 통해 빚을 성실히 갚고 있거나 불이익을 감내하고 있는 이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국회가 추진하고 있는 소멸시효완성 채권의 추심과 매각 금지는 “죽어도 죽지 않는” 부채에서 채무자들이 벗어날 단초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회수 가능성이 극히 낮은 채권을 헐값에 매입해 길게는 20년 뒤에나 추심을 재개하는 것을 “빚은 갚아야 한다.”는 추상적인 대원칙으로 정당화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년 이상, 1000만원 이하의 장기소액연체가 발생한 대규모로 발생한 시점이 대부분 1998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라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급격한 경기변동에 의해 예측하지 못하게 부채 상환 능력을 잃게 된 사람들이 길게는 20년 이상 “언제 되살아날지 모르는” 부채에 시달리는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 할 시점이 됐다. 소멸시효완성 채권의 매각·추심 금지가 특히 금융 약자들의 대출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문제는 정부 기금을 통한 변동형 중금리 대출 확대나 소멸시효완성 채권을 적정가에 매입해 각종 비용을 포함한 매입비용을 채무자에게서 회수하는 방식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한창 왕성한 경제활동을 할 시기에 저소득층으로 전락한 이들이 이제는 경제활동인구로서의 수명조차 많이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장기·소액소멸시효완성 채권”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저소득층이 재기할 기회의 문제를 넘어 점차 "생존 그 자체"의 문제로 전이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어느 누구도 자신을 팔아야 할 정도로 가난해서는 안 되며, 어느 누구도 남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해서도 안 된다"는 공화주의적 지향에도 주목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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