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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도, 민주주의를 만나다] 첫번째 이야기 , 우종혁 - 강원도 원주 무위당 기념관에서 서울시 종로구 전태일거리로 - 우리 역사와 민주주의의 가치, 방향성을 바라보는 법학도의 시선 - 우종혁, '따뜻한 공동체,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어 하는 청년'
  • 기사등록 2018-08-20 20:34:54
  • 수정 2019-08-12 12: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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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내일편집부 = 우종혁 칼럼니스트는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지켜보며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그것이 진정 우리에게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물음을 가졌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도서관의 책보다 역사의 현장에서 찾아보고자 여행을 계획했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지원하는 민주로드-민주야, 여행가자에 참가하게 되었다. 단국대학교 법과대학에 재학 중인 "민주 L.O.D (Law Of Democracy)" 3박 4일 간의 여정을 미디어내일을 통해 전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인데, 막상 민주주의가 뭐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탐방은 "민주주의란 무슨 뜻이고, 민주 정치란 어떤 정치일까?"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과정 중 시작되었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주인이 되어 국민을 위해 정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정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바로 민주 정치이다. ‘국민의 정치란 나라의 주인이 바로 국민이란 뜻이며, ‘국민에 의한 정치는 국민들이 정치에 참여한다는 뜻이고,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말은 나랏일이 궁극적으로 국민의 행복을 위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숭고한 민주주의가 우리나라에 이룩하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수많은 분들께서 희생하셨고 투쟁하셨다. 우리는 이를 기리고 추모하며 본받아 가슴에 새기고자 이번 여행을 기획하게 되었다. 더불어 법학도로서 민주주의를 바라보며 느끼는 것들을 바탕으로 우리 법의 가치와 방향, 목적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


▲ (사진 = 우종혁) 장일순 선생 초상


강원도 원주 무위당 기념관 (장일순 선생)


첫째 날의 첫 방문지는 강원도 원주 무위당 기념관이다. 무위당 기념관은 장일순 선생님의 삶과 사상의 자취를 다루고 있는 곳으로 그의 인권운동과 생명존중사상을 되돌아보는 공간이다. 장일순선생님은 1948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6·25전쟁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한 뒤에는 고향인 원주로 내려가 이후 원주를 떠나지 않으셨다고 한다. 19604·19혁명 직후 민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하였는데, 5·16군사정변 직후 줄곧 주장해 오던 '중립화 평화통일론'으로 인해 구속되어 3년간 수감생활을 하였다. 출옥한 뒤에는 지학순 천주교 원주교구장, 김지하 시인 등과 함께 강원도 일대의 농촌·광산 지역을 돌며 농민·노동자들을 위한 교육과 협동조합운동을 주도하였고 정치활동의 전면에는 결코 나서는 법이 없이 항상 뒤에서 반독재 투쟁을 지원하면서 사상적 지주 역할을 하셨다. 장일순 선생님은 참된 민주주의를 주장하셨고 용감하게 자신의 뜻을 밝히시는 일을 하셨다.


더불어 돌 하나, 풀 한 포기에도 존엄성이 있다시던 장일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경쟁과 권력의 원리를 넘어서 상호 협력하는 대안의 삶 추구하셨던 그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무위당 기념관에서 마주한 장일순 선생님의 생전 말씀은 하나하나 소박하고 투박한 단어들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 단어들이 모여 가치있고 의미있는 문장으로 탄생한다. 민주주의도 그렇다. 하나하나 작은 개인이 모여 태동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다. 끊임없이 반독재 투쟁에 나서면서도 시민민주주의, 농민과 노동자들의 공동체정신을 고취하고자했던 노력을 조금이라도 본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사진 = 우종혁) 강원도 원주 성당 미사실 전경


강원도 원주 원동성당


원주에 위치한 원동성당은 천주교 원주교구 주교좌성당인데, 1970년대 지학순 주교, 김지하 시인 등이 이곳을 중심으로 반독재 투쟁을 전개하면서 가톨릭 민주화운동의 요람으로 떠올랐다. 특히 유신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에 한 획을 그은 지학순 주교가 원주선언을 한 곳으로, 원주 지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원동성당에서의 민주화 운동을 되짚고, 공부하며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학순주교는 민주주의의 암흑기였던 1970년대, 어느 곳보다 빠르고 강렬하게 평화와 정의의 외침을 터뜨렸다. 723일에 '유신 헌법은 무효'라며 신앙인으로서의 양심선언을 하게 되는데 그는 이 발언을 빌미로하여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었고 징역 15년을 선고받게 된다. 그의 구속으로 인해 생겨난 물결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평생을 민주주의 수호와 지역사회 발전, 인권보호를 위해 힘썼는데, 작지만 의미 깊은 이 성당에서정의로운 한 사제의 뜨거운 외침에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원주는 어떻게 70년대 민주화의 성지가 되었는가? 1970년대 유신체제에 항거한 민주화의 성지는 단연 원주였다. 유신 독재시설 서울의 동쪽 변방에 자리잡은 원주는 민주화에 대한 염원을 강렬한 행동으로 실천했고 민주화역사에 길이 남을 저항의 도시였다. 원주가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곳이자 숭고한 정신을 지니고 있는 이유는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무위당 선생과 지학순주교가 계셨기 때문 아닐까 ?


서울시 종로구 전태일거리, 전태일동상


전태일열사는 봉제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 인권 운동가인데, 1960년대 평화시장 봉재공장의 재봉사, 재단사로 일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셨다. 임금, 퇴직금, 노동시간, 휴게시간, 휴일 등 노동자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지만 현장에서 무시되는 기본적인 권리를 단순히 '텍스트의 법'조항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법의 취지와 사회적 배경을 접하고 싶어 방문하게 되었다.



▲ (사진 = 우종혁) 전태일 동상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

- 19701113, 분신자살 당시전태일 열사께서 외치신 말이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그리고 열악한 근무환경에 놓인 어린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된 전태일열사는 노동 현실의 타파와 개선을 위한 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근로기준법' 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그 내용을 독학하려 하였으나, 기준법 전문이 한자 투성이인지라 도통 내용을 알 수 없어 한탄했다고 한다.


<</span>전태일 평전>을 통해 알려진 그의 이러한 생각은 당시의 대학생들에게 현실 참여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렇게 읽어낸 근로기준법상의 내용과 현실의 괴리를 절감한 그는 19696월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운동 조직을 창립하여 현재 근로 조건의 부당성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그는 19701113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라고 쓴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거행했고 그의 죽음을 바탕으로 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노동조합 등이 결성되는 등의 수많은 사회적 반향이 일어났다.


우리는 전태일거리에 서서 근로기준법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근로 및 노동에 관한 법이다. 민법의 특별법에 해당하는 법으로, 원래 근로계약은 민법에서 다루는 부분이지만, 상호 대등한 입장에서의 일반적인 계약과 달리, 고용주-노동자간의 근로계약관계는 실질적으로 대등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근로자 보호를 위해 만든 특별법이다. 대한민국헌법 제32조에서는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했다. , 이 법은 근로자들이 받아야 하는 최소한의 대우 조건을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이 실질적으로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고 있는지, 도입은 되었지만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근로기준법이 재, 개정되어온 과정 속에는 전태일 열사의 투쟁과 용기가 있었기에 노동 및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생각한다. 한자투성이인 근로기준법을 한자씩 깨우치며 현실에 참여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과 희생을 가슴에 새기어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해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오늘은 여행의 첫 단추를 꿰는 날이다. 아까 언급한 것과 같이 이번 여행은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민주주의가 우리나라에 이룩하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수많은 분들께서 희생하셨고 투쟁하셨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 지학순주교, 전태일열사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추모하며 본받아 가슴에 새겨야한다. 더불어 법학도로서 민주주의를 바라보며 느끼는 것들을 바탕으로 우리 법의 가치와 방향, 목적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도록 더 깊은 여행을 만들어가야겠다. 내일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있는 제헌헌법 초안 전시를 관람하고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을 찾는다. 법학, 그리고 사법부와 민주주의는 어떤 연결고리를 갖고 있을까?


우종혁 칼럼리스트


서울영동고등학교 졸업

단국대학교 법과대학에 재학 중

바른정당 서울특별시당 청년대변인 , 대학생위원회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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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따뜻한 공동체,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어 하는 청년"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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