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9-08-26 08:57:08
기사수정

【미디어내일N 박효영 기자】 박예휘 정의당 부대표는 미처 예상하지 못 했다. 그래서 울컥했다.


박 부대표는 22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故 장자연 씨 사건 진상규명 기자회견에 참석해 “조희천에게 무죄가 내려졌다”며 “여성에게 법원은 없다”고 외쳤다.


이어 “수많은 언론 보도, 증언, 증거 그리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 나선 이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유야무야 넘어갔던 장자연 사건에 대해 꺼지지 않은 불씨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는 문장으로 오늘 발언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 불씨에 법원이 찬물을 끼얹었다. 어느 나라의 어느 공권력이 이런 짓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울먹이며 말했다.


▲ 박예휘 부대표는 준비한 발언을 하면서 울컥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날 오덕식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는 장자연 씨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조선일보 기자 출신 조희천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조 씨는 소속사 대표 김종승 씨와 매니저들 외에 장자연 게이트에 연루된 인사 중 유일하게 법정에 선 인물이다.


장 씨는 2009년 3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소위 장자연 리스트를 남겼다. 본인에게 성폭력을 범하고 성 접대를 강요한 주요 인사들이 담겨 있었다. 당시 검찰은 김 씨와 매니저에 대해 폭행과 명예훼손으로 기소했고 성범죄에 연루된 인사들에게는 모두 무혐의로 결론 내렸다. 작년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장자연 게이트 전면 재수사를 권고했고 이에 따라 조 씨가 기소됐다.


조 씨는 2008년 8월 5일 김 씨의 생일 파티에 가서 장 씨를 무릎에 앉히는 등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오 판사는 당시 성추행 장면을 목격한 윤지오 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사건 초기부터 조 씨를 제대로 지목하지 않은 점이 의문스럽다는 취지다.


오 판사는 조 씨의 진술 번복에 대해 “여러 정황을 보면 피고인이 공소 사실과 같은 행동을 했으리라는 강한 의심이 든다”면서도 “윤지오 씨의 진술만으로는 피고인에게 형사처벌을 가할 정도로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가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 조희천 씨는 장자연 게이트에 연루된 인물 중 유일하게 기소됐다. <캡처사진=MBC>


박 부대표는 “아주 힘겹게 아주 더디게 여기까지 왔다. 가해자 고작 1명을 이제야 법정에 세웠다. 조희천에 대한 검찰의 구형은 고작 1년이었다. 그마저도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고 말았다”며 “이런 나라에서 언제까지 버티고 기다려야 하는가. 이런 기자회견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참담한 심경을 표현했다.


박 부대표는 일련의 장자연 게이트에 대해 “여성을 상품처럼 거래하고 데려와서 아니 가져와서 만지고 폭행하고 그 범죄를 서로 은닉하고 봐주고 증거를 조작하기까지 이런 일들은 언제까지 반복돼야 하는 것인가”라며 성토했다.


무엇보다 “목격자의 구체적이고 신빙성 있는 진술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수사는커녕 도리어 조희천을 무혐의로 불기소 처리했던 과거와 같은 일이 오늘 생생히 떠오른다”며 “1심 재판부는 사법 권력 스스로가 범죄의 당사자가 아니겠냐는 의심을 오늘 무죄 선고를 통해서 그것이 사실임을 드러냈다”고 오 판사의 결정을 강하게 질타했다.


더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의 삶을 조명했다.


박 부대표는 “정말 비통한 마음으로 다짐한다. 많은 발언을 준비했는데 더 이상 이을 수가 없을 것 같다”며 “문재인 정부의 취임사를 다시 들먹이지 않을 수 없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며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하는 건 비단 청년 문제나 노동·채용 이런 데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회가 남성 기득권에만 평등하고 과정도 남성 기득권에만 공정하고 결과 또한 남성에게만 정의로운 이 결과를... 바꾸겠다 앞장서겠다 최선을 다하겠다 이제 그런 말로 그만 끝맺고 싶다. 오늘 이 무죄 선고를 똑똑히 기억하며 치욕으로 삼으며 이 나라의 사법 개혁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겠다”고 공언했다.


▲ 박 부대표는 이날의 무죄 선고가 모든 성범죄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다음은 기자회견 직후 박 부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Q: 국회 차원에서 정의당이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려고 하는가?

A: 계속 특검을 추진했었다. 우리 당도 무죄가 내려질 줄 몰랐을 거다. 후속 논의는 곧 여성본부가 출범될 예정인데 같이 논의하고 무엇을 국회 차원에서 요구하고 만들어나가자고 할지 얘기하겠다.


Q: 삼성이나 대형 교회 못지않게 조선일보의 권력이 정말 센 것 같다.

A: (조선일보에) 저널리즘을 계속 요구하는 것이 좀... 그렇지만 그래도 요구해야 한다. 그래도 언론인데. 이게 조선일보, 조중동(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이 적폐와 비리의 온상이라는 고유 명사가 돼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무뎌지면 안 된다. 늘 거기는 그렇겠지라고 할 게 아니라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고 국회든 시민사회든 가차 없이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넘어가야 한다. 무죄 선고가 내려져서 브리핑 준비를 당연히 해야 할 텐데 거기서 날세게 비판하겠다.


Q: 국회 차원에서 사법 개혁을 다룰 때 젠더 감수성이 반영되는 부분도 중요할 것 같다.

A: 다른 당들은 지금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심상정 대표도 차별금지법을 제1호 법안으로 하겠다고 했다. 젠더 감수성에 대해 당연히 사법부가 그런 것을 탑재하고 담지해야 한다는 것은 정의당이 명확하게 요구해야 한다. 2018년 미투 정국을 지나왔는데 젠더 감수성 없이 사법 개혁을 논할 수 없다. 언론에서 얼마나 다뤄질지 모르겠으나 정의당 차원에서 아주 중요하게 밀고 나가겠다.


Q: 발언할 때 눈물을 보였고 울컥하는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A: 판결 결과에 너무 충격을 받은 것도 있고 구형 자체도 너무 낮기 때문에 이걸 설마 무죄를 내릴 것이라고 생각을 못 했다. 공감이라는 게 따듯하기만 한 키워드로 얘기되는데 사실 이것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 우리가 함께 내 발가락 아픈 것만 문제가 아니라 여러 사회 문제에 내 일처럼 관심을 가지는 노력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정규직 직원임에도 비정규직의 노동 환경 개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이 내가 겪는 불평등과 내가 바라는 사회의 변화된 모습과 무관하지 않고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어서 이입된 것도 있고 마치 나와 내 동료들 선후배들 모든 피해자에게 가해를 가한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더 복받쳤던 것 같다.


박효영 기자 edunalist@usnpartners.com


Copyright ⓒ 미디어내일엔 & medianext.co.kr 무단 복제 및 전재 – 재배포 금지


*독자 여러분의 광고 클릭이 본지와 같은 작은 언론사에는 큰 힘이 되며 좋은 기사 작성에 밑거름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관련기사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medianext.co.kr/news/view.php?idx=3057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기사 작성의 동영상 등록에 동영상 소스를 넣어주세요.

 메인 기사
게시물이 없습니다.
focus더보기
    게시물이 없습니다.
 최신 기사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