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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8-07 13:38:55
  • 수정 2019-08-31 22: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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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내일엔 남상오 기자】일본 경제침략에 맞서, 시민들은 'No Japan' 구호 아래, 일본상품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자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월 23일 더불어민주당 청년여성위원회 소속 학생, 청년 및 강서구 어머니들과 봉사단체 순풍지대 회원들이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쉼터인 ‘나눔의 집’을 찾았다.



▲ 지난 7월 23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학생, 청년 및 강서구 어머님들과 봉사단체 순풍지대 회원들이 나눔의집을 찾았다. <사진 = 남상오 기자>



무엇보다도 나는 위안부(comfort women)라는 말을 강력하게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따듯하고 부드러운 것을 의미하니까요. 저희는 위안부가 아니라 강간 피해자들

(rape victims)입니다.

-얀루프 호헤른(네덜란드 피해자)-


1990년대 들어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피해자들도 더는 숨지 않았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과거 일본 전쟁범죄에 대한 피해를 증언했고, 당시 김영삼 정부도 일본에 진상규명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을 '종군 위안부'라고 애써 지칭했다. 이는 종군이란 단어가 가진 의미 때문이었는데, 종군이 따라갔다는 의미가 강해 강제적 동원이 아니라 ‘자발적 행동'이었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의도적 꼼수였다. 일본은 ’종군‘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라도 성노예라는 씻을 수 없는 만행을 부인하고 '전쟁범죄 국가'라는 이미지마저도 희석하려고 노력해 온 것이다.


2012년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는 일본 우경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들은 전범국임을 숨기고 지구상에서 유일한 원폭 피해자를 자처하며, 선한 국가 이미지를 선전하고 있다. 결코 전쟁 중에도 야만적인 행동을 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서구 열강에 맞서 아시아를 지킨 선진국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약소국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제는 평화헌법도 개정해 전쟁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예전의 일본제국을 꿈꾸고 있다.


점차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에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치부고 젊은 세대에게 설명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드디어 2016년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발뺌을 하고 나섰다. 이렇게 뻔뻔한 그들에게 전쟁범죄인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본의 반성은 차치하고 그들의 왜곡된 주장 동조해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를 '위안부'라고 부르는 행위를 반성하자는 목소리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하지만 ‘위안부’란 단어를 ‘성노예 피해자’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주장은 또 다른 논란을 불러왔다. 일본은 노예가 뜻하는 강제성 때문에 반발했고, 피해 할머님들은 사실 여부를 떠나 ‘성노예’란 말이 노골적으로 성적 표현을 포함하고 있어 무척 불편해했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는 1993년 제정된 ‘일제하일본군위안부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피해 할머님들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고 규정하는 차선책을 선택했다. 결국 일본의 야만성을 드러낸 표현인 ‘성노예제’는 공식적인 지위를 얻지 못했다.


이날 ‘나눔의 집’ 봉사활동에 참여한 김모 씨 역시 "위안부라는 단어는 일본이 전쟁범죄를 순화시키기 위해 사용한 것"이라며 자신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로 하는 게 적절한 용어 선택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위안부'라는 단어가 할머님들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내가 너에게 70년의 삶을 설명하는 동안 70년의 삶이 지나갔다. 나는 여기 있는데, 너는 어디로 갔는가?

- '그림 속으로 들어간 소녀' 배홍진-


▲ 강일출 할머님, ˝이젠 전쟁이 없도록 해야지˝.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가 더이상 없는 세상을 희망한다. <사진 = 남상오 기자>


이날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는 이곳을 찾은 젊디젊은 청년들에게 다시 한번 당시의 아픔을 증언했다.


"경상북도 상주 출생으로 1943년 16살의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장티푸스를 앓아 부대 밖으로 이송되었고, 불에 태워지려는 순간 조선 독립군의 도움으로 구출됐다"


강 할머님은 "딴 사람들이 더는 우리나라를 침략해서는 안 된다.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도 우리 민족이다. 후세를 위해서라도 우리가 나서야 한다"며 "과거에도 여러분들이 있어서 (일본) 그 사람들에게 큰소리를 치고, 으름장도 놓을 수 있었다"라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 이렇게 관심을 두니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떨리는 목소리로 "(일본) 걱정하지 마! 괜찮아! (여러분들이) 우리를 많이 지켜줬으니, 이제는 내가 지켜줘야지"라며 "일본이 쳐들어오면 가만히 안 있어"라고 힘주어 말하곤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도 "이젠 전쟁이 없도록 해야지"라며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가 더 이상 없는 세상을 이야기하시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청년들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손자 같은 젊은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따뜻한 손길로 전해졌다.


한 봉사자는 "과거 우리나라가 힘이 없을 때 많은 민중이 희생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연약했던 여성들의 피해가 가장 컸었다"며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진심으로 참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정부도 피해자들에게 “그 당시는 나라가 힘이 없어 국민들의 꽃다운 인생을 망쳐버린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하고 위로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원봉사를 지원했던 정경숙 씨는 "할머님들이 연세가 들어가시면서 한 분 한 분 돌아가시고 있다“며 ”돌아가실 때마다 시민들의 관심도 계속 줄어드는 것 같고, 할머님들도 잊혀 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 <사진 = 남상오 기자>



한편 지난 7월 6일 철없는 젊은이들이 안산에 있는 소녀상을 모욕하는 사건을 비롯해 대구에서의 또 다른 소녀상 훼손 사건 등으로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지정해서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영등포구에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영등포구 소녀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채현일 영등포 구청장은 '영등포구 소녀상 건립 시 공공조형물 지정'하자는 여론에 대해 "좋은 제안인 것 같다“며 ”건립 시 관련 단체, 구의회 등과 협의하여 공공조형물 지정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남상오 기자 wisenam@usnpartn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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