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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7-29 18:28:20
  • 수정 2019-08-25 17: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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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코엑스 3층에서 열린 `시작과 기회` 세미나에서 이경준 디자이너가 청중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설아>


미디어내일N 이설아 기자'90년대생이 온다(2018, 웨일북)'라는 책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회사에 헌신하고, 노력해야만 성공하는 것이 당연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일과 삶의 균형인 '워라밸'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세대. 상사의 갈굼을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세대. '90년대생이 온다'는 이러한 독특한 세대를 후배 사원으로, 또는 소비자로 만나 충격받고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40, 50대들을 위한 90년대생 설명서다.


이런 90년대생에 성공도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불과 수년 만에 아무것도 없던 군 전역자에서 지금은 성황리에 개인전을 열고, LGSKY 같은 대기업과 협업하는 성공한 디자이너가 된 이경준(26, 활동명 블루샤크). 이쯤 성공한 작가라면 부단한 노력가이겠지 하는 생각과는 달리 자신을 게으르고 늘 작업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겸손이 아닐까도 싶었지만, 실제 이 디자이너가 작업하는 시간은 하루 2~3시간에 불과하다.


블루샤크를 만나다


7회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가 열리는 코엑스 3층에서는 이경준 디자이너의 세미나 '시작과 기회'가 개최됐다. 예비 디자이너들과 팬들을 상대로 자신이 디자이너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세미나에서 이 디자이너는 자신이 결코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거나 똑똑한 인물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오히려 학창 시절에 주변을 보면 으레 있을 법한 학생이었다. 교과서에 낙서를 자주 하는, 남들보다 미술에 소질은 있으나 예고나 미대를 가기엔 실력이 부족한 '어중간한 재능'의 소유자였다. 공부 성적도 뛰어난 편이 아니어서 애매한 성적으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수능을 치고, 남들처럼 성적에 맞춰 대학 입시에는 성공했으나 전공이 맞지 않아 늘 괴롭기만 했다.


그래서 미술을 다시 배우겠다는 생각에 시각디자인과로 전과했지만,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한 그림은 '종이에 끄적거리는' 것이었는데, 이런 방식은 컴퓨터로 깔끔하게 그림을 뽑아내야 하는 시각디자인과의 주요 수업과는 본질적으로 맞지 않았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전문 그래픽 도구는 복잡하고 다루기도 어려웠다. 할 수 없이 그나마 쉽다는 컴퓨터 기본 프로그램, 그림판으로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림판은 그림판이었다. 아무리 과제를 잘 그려도 교수님의 질책은 피할 길이 없었고, 이 디자이너는 학과 과정을 따라가기 벅찬 나머지 군대로 도피했다.


제대하고 나서 그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알바 사이트를 통해 구한 월급 140만 원짜리 가구 디자이너 일로 생계를 유지하기 시작한다. 직원은 달랑 혼자, 가구 디자이너라고는 하지만 현장에서 나무를 만지는 일이 더 많았고 디자인 업무와는 관계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처럼 성공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우연히 찾아온 기회 때문이었다. 대학 재학 시절을 추억하며, 과거 시각디자인과 교수님이 포스터의 기본이 되어 있지 않았다고 혹평했던 작업물 하나를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 화제가 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해당 글에 대한 반응이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좋아요5000여개를 넘었고 '내가 교수님이었다면 칭찬했을 텐데 교수님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다'라는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렸다.


이 디자이너는 깨달았다. 자신의 은사였던 그 교수님이 좋은 경력과 전문적인 식견을 지닌 훌륭한 분이었지만, 결국 그분도 일반인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그러자 슬픔과 좌절은 희망 뒤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좋아하는 대중들만 만나도 자신의 꿈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 후 직장을 다니며 하루에 하나씩 타이포그래피와 같은 개인 작업물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이때 올린 작업물들 역시 쉬운 그림판으로 그린 것들이었다.


그렇게 작품을 올린 지 3개월이 지나자,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서 작가로 부르기 시작했다. 플랫폼에 올린 작품을 보고 스타트업에서 로고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면서 첫 외주도 맡게 됐다. 원래 광고물을 주로 작업했지만, 사람들이 로고 의뢰를 계속하자, 아예 로고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디자이너는 그렇게 프로의 세계로 진입했다.


성공 포인트란 그냥 내가 좋은 것들을,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


팬들이 이경준 디자이너에게 애정을 담아 '블샼', '청상어'님 등으로 약칭하는 활동명 블루샤크도 그때 지어졌다. 그냥 별 의미 없이 상어가 좋아 상어 캐릭터를 그렸는데, 사람들이 그 상어를 자신의 캐릭터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자 이를 그대로 차용한 것. 예명과 호()에 깊은 뜻을 담는 기존의 공식과는 사뭇 다른 패턴이었다.


그는 자신의 성공 경험상 다른 것보다 다양한 플랫폼에 자신을 전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차피 자신을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고, 아닌 사람은 아닐 테니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서 자기를 좋아해 줄 사람을 찾는 게 빠르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그라폴리오 등과 같은 무비용 플랫폼이 많다. 무자본으로도 얼마든지 시작할 기회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강연 말머리, 그는 슬쩍 걱정을 덧붙였다. 자신의 성공만 그런 것인지, 자기가 돌연변이라 허황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긴 한다고. 그러나 그를 위해 주변 작가들에게도 물어본 결과, 다행히 비슷한 경험을 겪은 이들을 다수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경준 디자이너의 사례처럼 우리는 바야흐로 기존의 상식과 달리 ’90년대생들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만약 이 디자이너가 교수님처럼 '전문가'들에게 들은, 자네는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기 힘들 것 같다는, 그 말이 정말이었다면 오늘날 이 디자이너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경준 디자이너는 계획 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겠다고 말한다. 여태껏 오히려 정형화된 계획을 짜고, 그 목표에 맞게 노력하였을 때 성공한 적이 없었다는 것. 그의 인생 역정은 노오력이라는 단어로 대비되는 기성세대의 노력 성공 담론에 진저리치는 청년들에게 또 다른 인사이트를 제공해준다.



이설아 기자 seolla@usnpartn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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