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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7-18 23:23:07
  • 수정 2019-08-09 15: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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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씨는 문고리를 잡고 침입하려고 시도했다. <캡처사진=유튜브 영상>



【미디어내일N 박효영 기자】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5월 28일)이 동영상을 통해 알려졌을 때 국민적 분노가 일었다. 범인이 문고리를 잡고 침임을 시도하는 장면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범인은 구속됐고 여성의 안전한 귀갓길을 만들기 위해 여러 대책이 쏟아졌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당장 단기 대책으로 불리는 ‘안심 귀갓길’ 정책이 강화됐다. 이미 6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제대로 기능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안심 귀갓길 정책은 크게 ①비상벨 ②귀갓길 동행 ③안심 버스제도 등이 있지만 주로 기초단체 주관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지역별 편차가 크다.


먼저 ①은 안심 귀갓길로 지정된 곳에 있는데 그걸 누르면 관할 지구대로 연결되는 구조다. 문제는 안심 귀갓길 대비 설치율이 50%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관리도 부실하다. 이를테면 △공사장 안내판과 같은 지형지물에 가려 있고 △벨에 비상벨 표시가 없고 △차도에 설치돼 있어나 그래서 접근성이 부족하고 △길바닥 페인트 표시된 비율이 20%에 불과하고 △고장 나 있는 등 개선돼야 할 것들이 많다.


잘 갖춰진 곳이 있어도 홍보가 부족해 이용률이 높지 않다.


②은 광역단체와 기초단체별로 서비스 명칭이 제각각이고 서울의 경우 다산콜센터(120)나 스마트폰 앱으로 신청하면 약속된 곳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안심이’ 앱은 켜둔 상태에서 긴급할 때 스마트폰을 흔들면 경찰서로 연결될 수 있다. 2인 1조로 동행하는 사람들은 주로 중년 여성이다. 남성이라면 서비스 이용자가 또 다른 성범죄 위험에 노출될 수 있고 여성 2명이 동행하는 것만으로도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③은 22시 이후 마을 곳곳을 누비면서 정류장이 아닌 원하는 곳에 하차시켜주는 서비스다. 하지만 서울시 강북구에서만 시행하고 있고 그조차 홍보가 부족해 이용률이 매우 낮다.


서울시에서 운용하는 ‘여성 안심 홈 4종 세트’ 지원사업의 경우 예산이 뒷받침되지 못한 탓에 지원 대상이 너무 제한적이다. 이를테면 △여성 1인 가구 전월세 보증금 1억원 이하 △단독 세대 거주 △30세 미만 △미혼모나 모자 가구 △여성 1인 점포 운영자에게만 지원된다. 세트 구성은 △디지털 비디오창(밖의 상황 모니터링 및 캡처 가능) △현관문 보조키 △문 열림 센서(부재 시 문이 열리면 신호로 알려줌) △휴대용 긴급비상벨(긴급 시 벨을 누르면 가까운 지인에게 문자 전송) 등이고 현재 양천구와 관악구 두 곳에서만 실시되고 있다.


CCTV를 좀 더 많이 설치하면 발각될 가능성으로 인해 어느 정도 예방 효과가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사후적인 용도다. 아직 서울 시내 동네 곳곳에 CCTV 사각지대도 많다.


▲ 정춘숙 의원은 스토킹법 등 여성 폭력에 대한 법안을 다수 발의했다. <사진=정춘숙 의원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8일 오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여러 여성 안심 정책에 대해 국회 차원으로) 점검을 하긴 하는데 사실 어떤 것이 더 실효성이 있을까 고민이 든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더 낫다”며 “현장에 입각한 대안들을 많이 세워줘야 하고 무엇보다도 가해자에 대한 분명한 처벌, 피해자에 대한 조건 없는 지원 이런 게 기본이 되고 그다음에 여러 공적 서비스가 보조하는 방향이 맞다”고 강조했다.


최근 경찰이 여성 1인 가구가 밀집된 골목에 순찰을 강화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여성들이 불안감을 느껴 신고하면 적극적으로 대응해줘야 한다.


▲ 신지예 위원장은 남성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몰리는 만큼 여성들이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지난 5월 31일 기자와 만나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적절히 조치해서 피해받는 시민들이 없도록 예방하는 것도 경찰의 의무”라며 “여성 폭력, 가정 폭력 등 이런 범죄를 개인 간의 갈등으로 취급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경찰의 모습이 너무 고질적으로 지속됐다. 스토킹법이 제정되기 이전에라도 경찰 내부에서 이런 위법들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가이드라인을 만들거나 관련 교육을 철저히 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어 “들어오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접수를 가볍게 넘기지 말고 이 사건이 지금 가벼워 보여도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철저하게 예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보면 (경찰이) CCTV를 먼저 확보하라고 하고 피해자에게 들고 오라고 하는 것은 책임 방기라고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여성의 귀갓길을 쫓는 범인들이 처음으로 범행을 시도할 때 엄중 처벌될 수 있도록 스토킹법이 제정되는 것이다. 첫 시도가 성범죄 기수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처벌될 수 있어야 다음 범행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을 일으킨 30세 남성 조 씨도 문고리를 잡고 침입하려는 시도만 있었기 때문에 처벌 법규 미비로 논쟁이 좀 있었다. 침입할 의도는 분명했지만 성폭행인지, 절도인지, 살인인지 의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폭행 미수의 경우에도 인정되려면 옷을 강제로 탈의시키는 정도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통념이었다.


다만 조 씨가 △아침에 귀가하는 여성의 뒤를 밟았고 △자신의 성기를 만졌고 △스마트폰 라이트를 켜서 두 차례 현관문 번호키를 풀려고 시도했고 △계단에 매복해 있었고 △빌라를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초인종을 계속 눌러 위계로 속여 출입하려고 한 점 등을 법원과 검찰이 전후 맥락에 따라 전향적인 판단을 했다.


당초 스토킹 처벌법이 있었다면 명확하게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행 경범죄 처벌법 3조 1항 41호에 따르면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지속적 괴롭힘)”에 대한 처벌 수위는 △1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 △구류(1일 이상 30일 미만의 유치장 생활)에 불과하다.


이미 국회에는 5건의 스토킹 처벌법이 발의돼 있지만, 계류 중이다.


정 원내대변인은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 소관이라 진행이 안 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직접 대표 발의) 발의한 의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여성 폭력 관련 법들이 사회적 지지를 많이 받는 것에 비하면 법사위원들은 기본적으로 법을 새로 만드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고 굉장히 보수적이다. 그래서 뭔가 여성 관련 법들을 제정하는 것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현재 여성들은 고전적으로는 남성 구두나 속옷을 비치하고 있고 그 외에도 생활 습관적으로 매 순간 경계심을 놓지 못하고 있다. 결국 근본적으로 남성들이 여성의 일상적 공포감에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 여성 공포 사회는 이미 펼쳐져있지만 향후 어떻게 개선해가는지가 중요하다. <캡처사진=채널A>


이와 관련 정 원내대변인은 “여성 폭력 피해에 대한 이해가 훨씬 더 많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남들이 볼 땐 괜찮은 것 같은데 그래도 실제로 본인이 볼 때 위험하다고 느끼고 불안해하면 그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뭐 여성이 골목길을 가는데 자꾸 뒤를 보면서 자기를 범죄자처럼 생각한다는 이런 게 남성들이 갖는 분노라고 하더라. 자기는 범죄를 저지를 생각도 없는데 여성들이 과대망상에 걸려서 노이로제처럼 과민 반응을 한다고 하는데. 돌려서 생각해보면 그런 취급을 많은 남성이 겪었던 만큼 동시에 그만큼의 수로 그러한 불안감을 느끼고 여성들이 살아간다는 걸 남성들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역설했다.


이어 “한국 사회에 여성 폭력이 만연하고 그것에 따른 시스템 보완이 필요하다는 걸 이해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걸 자꾸 성 대결의 구도로 가져가서 페미니스트들이 나선다고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비효과처럼 많은 남성이 이대로 가면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박효영 기자 edunalist@usnpartn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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