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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원 칼럼] 사육 말고 교육을, 영재 말고 천재를, 우등생 말고 문제아를 원합니다 - 2번의 집회, 2번의 시민자유발언, 2번의 행복 -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함께하겠습니다.
  • 기사등록 2018-11-04 20:43:28
  • 수정 2019-08-12 1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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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10. 13 (토) 3차 집회 때 가수 안현이 `행복의 나라로`를 열창하고 있다. <사진 = 정석원>



대한민국 교육은 사육이다. 사육사들은 아이들에게 지식을 떠먹인다. 소가 여물을 먹듯이 아이들은 지식을 어거지로 씹어 삼킨다. 왜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아이들은 그냥 사육사가 주는 대로 받아 먹는다. 대한민국의 학교는 동물원이다. 학교 선생들은 성적이라는 채찍을 들고 문제 풀이 훈련을 행한다. 국민들은 문제를 잘 푸는 아이들을 영재라고 치켜 세우고, 훗날 그들이 국가의 기둥이 될 거라며 칭송한다. 하지만 이 나라에 천재는 없다. 출제된 문제를 잘 푸는 아이들은 넘치고 넘치나, 문제를 만들어내는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다. 우등생은 많으나 문제아는 없다.


대한민국의 영재들은 이미 엎질러진 물을 푸는 건 잘하지만, 물 엎지르기는 아예 못한다. 다른 사람이 제 얼굴에 뱉은 침을 닦아내는 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타인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은 우주 꼴찌 수준이다. 대한민국의 문제 풀이 기계들은 히드라보다 못한 존재다. 히드라는 자신의 온몸을 동원하여 적에게 침을 뱉지만, 자칭 대한민국의 영재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타인과 사회의 눈치를 보며 침을 삼키기에 급급하다.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 제 모습을 본 김수영은 자기가 "반항하고 있는 것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절정 위에 서 있지 않고 조금쯤 옆에 비켜 서 있는 것"은 "비겁"한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며 침을 뱉으라는" 김수영의 저항적 외침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든 저급한 영재들의 마음속을 후벼판다.


대한민국의 하청업체적 영재들은 지능적이지만 지혜롭지 못하다. 지능 발달 수준(Intelligence Quotient)에 대한 관심도는 높으나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Philosophic mind)은 없다. 한병철의 말처럼, 지능(Intelligenz)은 '- 사이에서 고르기(inter-legere)'를 의미한다. "지능은 시스템에 의해 규정되어 있는 사이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지능에게는 외부로 나가는 출구는 차단되어 있으며, 허용되는 것은 오직 시스템 내의 선택뿐이고, 따라서 지능은 진정한 의미의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없으며, 다만 시스템이 제공하는 선택지들 사이에서 고를 수 있을 따름이다." 객관식 오지선다형 문제에서 정답을 잘 고를 줄만 아는 대한민국 영재들은, 그 문제를 넘어서는 초월적 생각, 어둠을 밝히는 철학적 생각, 세계의 앞날을 이끌어가는 선도적 생각을 하지 못한다. 혁신적이며 혁명적인 창출의 영광을 감히 품지 못한다. 모범생들의 품 속에는 문제의식이 없고 제 앞가림의식만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기둥이라고 일컬어지는 영재들은, 국가의 앞을 가릴 뿐이고, 오히려 미래의 시간적 흐름을 좌절시킨다. 차라리 없는 만도 못한 것, 즉 과유불급이다.


대한민국 영재들은 개념(Begriff)이 없다. 개념 없는 영재들이 이끌어가는 대한민국 사회에는 당연히 개념이 없다. 개념이란 "A와 B를 자기 안에 포함하면서(in sich begreifen) 이를 통해 A와 B가 이해되도록(begriffen) 만드는 C를 가리킨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 C에서 비로소 A와 B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가능해지고, 개념은 A와 B를 포괄하며 양자의 관계에 근거를 제공하는 최상의 연관성이며, 개념 C를 통해 비로소 A와 B는 '더 고차원적인 제 3항의 계기'를 이룬다." 개념은 A와 B 사이에서 나오는 그 무엇, 즉 결론(Schluss)이다. ("모든 것은 결론이다"라는 말은 "모든 것은 개념이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눈을 감는 것(Augen schließen)은 결론(Schluss)에 대한 상징적 이미지다." 수능형 객관식 문제를 풀 때 재빠르게 휘둘리는 영재들의 천박한 정답 맞히기 눈 놀림은 "눈 감기, 즉 사색적 결론을 불가능하게 한다." 대한민국의 영재들은 A와 B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A와 B를 넘어서는 C를 보는 능력 자체가 함량 미달이다. A와 B라는 파편적 지식을 암기하는 데에는 도를 텄으나, A와 B를 능가할 기량은 쥐새끼 발톱에 낀 때만도 못하다. "오직 사색적인 머무름만이 결론에 이를 수 있지만", 경쟁에 치여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대한민국 아이들에게는, 사색도 없고, 결론도 없고, 개념도 없고, 결국 현재를 뛰어넘는 고차원적 미래도 없다.


최근 9월부터 11월 사이에 대한민국의 천재들이 문재인 대통령 교육공약 지킴이 국민운동을 저질렀다. 영재들의 낯짝 위에 차디찬 물을 거세게 끼얹었다. 판을 뒤엎어버렸다. 광주교사노동조합, 전국교육연합네트워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좋은교사운동,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등 문재인 대통령 교육공약 되찾기 촛불문화제의 참여자들은 모두 다 천재다. 이들은 문제만 풀 줄 아는 범생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시대적 보편성을 뛰어넘어 교육의 선견지명을 온몸을 다해 실천하는 초인Übermensch들이다. "절대적으로 갑작스러운 것과 파괴적인 것에 대한 각오"로 인해 "지금까지 통용되던 것과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완전히 새로운 상태가 시작된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교육공약들 중 '2015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수능 절대평가 실시', '초중고 필수과목 최소화 및 선택과목 확대', '수시 수능최저학력기준 폐지 검토'는 포기된 상태이고, '진로 적성 중심 고교학점제 실시'는 연기된 상태이며, 기타 '영유아 대상 과도한 사교육 억제', '아동인권법 제정으로 휴식 시간 보장', '자유학기제 확대', '혁신학교의 전국적 확대', '자사고 · 특목고의 일반고 전환', '국립대 공동학위제 및 공영형 사립대 육성', '입시와 채용에서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제정'은 불확실한 상태이다. 국가의 미래를 선도하기는커녕 오히려 역행하는 교육현상을 보고도, 자칭 대한민국의 영재라고 떠들어대던 자들은 함구무언이고 여전히 묵언수행 중이며 눈 가리고 아웅 중이다. 동물원의 사자가 살만 뒤룩뒤룩 쪄서 결국 뛰어다닐 능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사육사의 채찍질에 길들여진 지 오래인 암기왕, 문제풀이황제들은 끝내 그들의 목청까지 빼내어 동물원에 갖다 바쳤다. 어렸을 적부터 코끼리 말뚝 이론에 따라 팔과 다리가 시험 성적이라는 말뚝에 묶여버린 대한민국 영재들은 영원히 말뚝 주변만 맴돌 뿐, 말뚝 뽑기를 시행하지 못한다. 말뚝 뽑기, 변화, 혁신, 변혁, 개혁, 그리고 혁명의 목소리는 영재가 아니라 천재들로부터 나온다.


역사적인 사건, 유일무이한 사건,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은, 현존 체제에 약삭빠르게 적응하고 재빠르게 순응하는 지능아들에 의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통념에 대한 깊은 불만을 느끼고 확고한 의심을 갖고 거센 질문을 던지는, 이른바 저능아들에 의해 현현한다. 기존 시스템에 예속되지 않고, 불의와 부정의를 보면 몸서리를 치며, 문제를 보면 그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추궁하는 저능아들은, "바보"이며, "천치"이고, "백치"이다. 결과나 성과 여부에 상관없이 두 달 가까운 긴 시간 동안 걷한 광장 위에서 흩뿌린 우리의 구호와 함성은 분명 먼 미래를 밝히는 또렷한 등불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이 바로 설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넘어지고 일어나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또 넘어질 것이지만, 오뚝이처럼 또다시 기립하여 결국 똑바로 보행할 것이다. 교육동물원의 철창과 족쇄를 온통 다 허물어 사육된 동물들을 해방시킨 다음, 원없이 뛰어놀고 헤엄치고 날아다닐 수 있는 바보들의 교육생태계를 창조할 것이다. "독특함, 특이성이 바보의 본질이다. 그래서 바보는 아직 개인도, 인격도 아닌 아기들과 근본적으로 닮았다." 결국 바보, 천치, 백치, 아기, 천재들은 대한민국 교육역사에 거대한 획을 긋는다.


P.S.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함께하겠습니다.


정석원

건국대 철학과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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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2. 김수영, 시여, 침을 뱉어라.

3. 한병철, 심리정치.

4.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Enzyklopädie der philosophischen Wissenschaften im Grundrisse 1830, Erster Teil, Die Wissenschaft der Logik, Werke in zwanzig Bänden, E. Moldenhauer & K. M. Michel 편, 8권, Frankfurt a. M. 1970, p.332.

5. Friedrich Nietzsche, Nachgelassene Fragmente. Frühjahr 1881-Sommer 1882, Kritische Gesamtausgabe V2권, Berlin 등, 1973, p.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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